설교

날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야 하는 이유(마26:36-46)

우리 희망교회에 오랫동안 기도해 왔던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20년전에 구입한 교회건물의 난방을 위해 석탄보일러를 사용해 왔는데 가스로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가스 난방작업을 시작한지 1년이 넘었지만 독립적으로 희망교회건물에 가스 파이프를 가져와서 가스난방을 설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자체 건물이 가스난방을 사용하기 위해 전문 기관을 통해 돈을 지불하며 프로젝트를 만들어 정부기관의 허락을 받아야했으며 가스파이프연결작업, 자체 3개의 가스보일러 구입등 엄청난 비용이 들 예정이었고, 정부 허락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정부의 기관으로부터 상상도 못했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교회옆 체육관을 대여해서 가스난방시설을 설치하고 우리 교회건물에 가스난방을 연결시켜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이 정부기관과 계약을 해서 난방 작업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리고성과 같고 골리앗같은 어려운 문제였는데, 이 가스난방을 위해 여러 후원교회와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여러분도 함께 기도했기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적으로 가스난방문제를 해결해 주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사람인가? 기도가 여러분에게  삶의 일부인가?
여러분은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까?

오늘부터 제자의 삶 시리즈 시작한다.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와 희생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먼저 겟세마네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동산에 올라가셨는가?

여러분도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자신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예수님처럼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겟세마네동산에 날마다 올라가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겟세마네동산은 자신의 부인하기위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겟세마네동산은 자기부인의 동산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심정으로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37절에 보면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절을 보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극도의 마음의 고통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이렇게 고민하고 슬퍼하시는 가운데서도 주님은 따로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39절 말씀은 주님께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자세로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누가복음 22:44은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우리 주님은 간절히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고통스럽게, 그리고 간절하게 핏방울같이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의 주 내용을 살펴보십시오. 39절.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잔’은 십자가 지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는 말은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을 뻔히 아시는 예수님께서 왜 이런 기도를 하셨을까요?

종종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육신적 고통에만 국한시킨 때가 많습니다. 매번 고난주간이 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어떤 고난을 당하셨는가를 리얼하게 묘사합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어떤 고난이었는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뼈 조각이 붙은 채찍으로 매를 맞아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당하시고, 가시관으로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결국 20센티미터나 되는 대못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시고, 무게 중심의 이동에 따라 살이 찢겨져나가는 고통과 함께, 햇볕에 몸이 마르는 6시간의 사투 끝에 완전 탈진 상태에서 운명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침 뱉음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시고, 온몸이 발가벗김을 당하는 수치를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당하신 육신적, 정신적 고난입니다. 물론 이 고통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십자가 사형 방법은 모든 사형방법 중에서 가장 극악한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육신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끊어지는 영적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늘 성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이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도다.”(요 8:29).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어,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죄인으로 죄값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아버지로부터 단절과 거절을 경험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소외와 단절보다 더한 고통은 없습니다. 자식들로부터 쫓겨난 부모, 부모에게 버림 받은 자녀들, 남편과 아내에게 버림 받은 사람, 친구에게 왕따를 당하고,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들…. 이러한 사회적 고통들은 육신적인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한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입니다. 진정 구원 받은 성도라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끊어지는 괴롬보다 더한 괴롬은 없음을 잘 압니다. 반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기쁨보다 더한 기쁨은 없습니다.

성도는 주님으로부터 끊어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은 십자가 자체의 고통보다 십자가의 죽음으로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되고 거절받는 고통입니다. 이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으며,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도란 내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주님의 기도속에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자기를 부인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 우리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내 뜻을 포기할 수 있는 힘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세상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심한 고민과 슬픔에 직면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기도함으로 힘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 손에 심한 신경통과 신경마비증세를 가졌던 바이론 제니스(Byron Janis)는 갑작스럽게 모든 손가락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거나 오른쪽 손목이 40%정도 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제게 싸울 용기를 주셨습니다. 저에게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저를 사로잡지는 못했습니다(I have problems, but they don’t have me).” 그는 기도를 통하여 모든 장애를 뛰어넘는 넉넉한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음악가 하이든도 저명한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음악적인 한계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질문에 “내 집에서 나는 작은 골방을 기도실로 정했습니다. 일에 지쳤을 때나 고민이 시작되면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나는 그 방에서 나올 때는 작은 빛을 발견하고 나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이든에게는 그 골방이 겟세마네 동산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삶속에서 겟세마네를 경험하는 일이야말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에 동참하는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여러분 자신의 자기부인의 동산인 겟세마네동산에 날마다 올라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38.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깨어 있으라’의 원어의 의미는 조심스럽게 경계하면서 주위를 지켜보거나 심적으로 태만에 빠지지 않고 각성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동사이다. 띠라서 본문에서 이 동사는 단지 육신적인 잠에서 깨어 있다는 의미를 가리키기보다는, 마치 도적을 막기 위하여 경성하여 있는 것과 같이(계 16:15)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방심하지 않고 그 마음을 굳게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41절).여기에서 이 동사가 명령형으로 쓰인 것은 제자들이 반드시 그렇게 하고 있어야 하며,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깨어 있는 기도를 통해서 제자들 자신이 그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기 원했던 것입니다.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Mat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예수님이 기도하다 돌아와 잠자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마가와 누가복음을 보면 특히 베드로를 깨우며 말씀하셨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 26:40-41; 14:38). 이 말씀은 시험을 이길 있는 방법이 기도에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십자가는 예수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도 생명의 위협과 큰 시험거리였다. 예수님이 체포될 때 그걸 느낀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되 맹세하며 저주하며 부인했다. 깨어서 기도했어야 했던 베드로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잤고, 그 결과 여종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시험에 빠진 것이다. 제자들도 주님이 기도했듯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만 잠에 빠져 기도하지 못하다가 시험에 단단히 들고 만 것이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해서 깨어 있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베드로처럼 시험에 들게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키려고 덤비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산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시험에 들기 마련이다. 왜 맨날 자존심상해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신앙적인 시험에 드는가? 기도하지 않아서다. 왜 사역하다가 지치고 포기하는가? 기도가 약해서 그렇다. 왜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낙심하는가? 기도하지 않아서이다.   

성도는 기도하지 않고 승리할 재간이 없다. 염려와 근심과 싸워 이길 재간이 없다. 사단의 공격을 기도 없이 이겨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에게서 나타내주신다. 오직 기도할 때 염려와 걱정은 사라지고, 담대함과 승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히겠는가? 

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음은 원이로되에서의 마음은 원어가 성령 혹은 영혼을 가리킨다. 여기서 육신은 타락한 육신적인 본성을 의미한다. 타락한 육신은 기도하지 못한다. 육신의 생각은 기도하지 않는 쪽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기도할 욕구도 주시고, 기도를 돕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해서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기도하라.

기도할 때 먼저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구하라. 그리고 그 임재와 성령님의 도우심속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라.

그러므로 기도할 때 갈2:20말씀을 고백하라. Gal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렇게 고백하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고,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사십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모든 문제들, 내 생각과 계획을 십자가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왕이십니다. 성령님이 왕이심을 선포합니다.’ 이렇게 먼저 성령님의 임재와 충만함을 위해 기도한 후에 성령님의 도우심속에서 깨어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날마다 겟세마네 기도의 동산에 올라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Mat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Mat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님은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왔음을 아셨다. 로마병정들이 자신을 체포하여 곧 십자가에 죽게 될 것을 아셨다. “일어나자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 라고 말씀하셨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결연히 일어나셨다. 
요17:4절에 예수님이 기도의 내용을 아십니까?
Joh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우리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고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안에서 깨어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내 생각, 내 계획, 내가 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는 마음과 함께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럼으로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기 원하는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날마다 자기부인의 동산인 여러분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십시오. 



여러분은 최근에 미국의 애즈버리 대학에서 일어났던 부흥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하고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부흥을 위해 2019년부터 기도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중국계 말레이지아 사람인 홍 교수였다. 미국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말레이시아에서 14년동안 교수사역을 하던 중 2015년 애즈버리 대학교에 방문교수로 머물렀는데, 하나님께서 교수직을 내려놓고 애즈버리의 부흥을 위해 풀타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는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지 못했지만 여러차례 확인후 2019년에 윌모어로 이주하고 애즈버리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여름에는 하나님이 “회개하라,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는 사인을 들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주셨고 그는 또 한 번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그 사인을 자기 몸 앞뒤로 메고 다녔으니 얼마나 우스운 모습으로 보였을지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현지인들은 이 홍교수를 샌드위치 맨 혹은 사인을 든 사람( a man with a sign)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홍교수뿐만 아니라 많은 기도용사가 새벽을깨워 함께 부흥을 위해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즈버리대학교의 부흥이 알려지자 미국의 CNN, FOX NEWS 등 다양한 방송사에서 그를 찾아 인터뷰를 요청해왔지만 그는 한번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부흥을 가져온 분은 하나님이시고, 모든 영광을 홍교수가 아닌 하나님 홀로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애즈버리 대학교의 부흥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유명 목사들과 유명 찬양인도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그 어떤 알려진 목회자나 찬양인도자를 세우지 않고 평소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분들이 계속 예배를 이어갔습니다. 이제 이 거룩한 부흥의 불길이 미국의 다른 대학교에 번져 지속적인 예배가 일어나고 회개와 기도의 행진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어떻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나와 나의 가정, 직장, 교회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 짊어지기를 원하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십시오. 그 십자가는 결코 가볍지 않고,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겟세마네동산에 날마다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넘치는 기쁨과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 혼란하고 마지막 시대에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는 자로 살기 위해 날마다 자신의 겟세마네동산에 올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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