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입니까?(눅14:25-27, 33)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Juan Carlos Ortiz) 목사는 그의 책 “제자입니까?Disciple“ 에서 다음과 같은 스토리에 대해 말씀합니다. 오르티즈목사는 교회가 부흥은 하고 있었지만, 그는 목회에 무언가 잘못되고 가고 있음을 느끼고 모든 목회 활동을 중지하고 2주 정도 한적한 곳으로 가서 묵상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성령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씀을 듣습니다.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사가 잡지와 책을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술수를 쓰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을 찾아보겠느냐?” 두번째로 그가 들은 말씀은, “너는 자라나고 있질 않다 네 생각에, 네가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 가는 것이다”
이 성령의 말씀을 통해 오르티즈목사는 제자사역에 눈이 뜨이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당신은 제자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이 땅에 공생애 3년기간의 핵심사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12명의 제자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유언처럼 남긴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가볍게 취급할 말씀이 아닙니다. 지상명령이며, 우리가 반드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정기적으로 예배에 출석하는 정도의 교인입니까? 아니면 나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의 제자인가 입니다. 주님은 내가 성숙한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변화되면 세상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자신도 자신의 12명의 제자를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킬 비전이 있었습니다. 10명의 의인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나 가정이나 사회의 어려움과 문제점은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교회에 몇명의 성도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느냐가 아니라 우리 교회에는 몇명의 제자가 있느냐는 질문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우리 사회에 정말 절실한 것은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누가 제자입니까?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이며,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 처럼 사는 자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주님을 믿기로 한 자는 모두 예수의 제자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군중과 제자를 구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안에 머무는 자가 제자가 하셨고,
Joh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Joh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서로 사랑하면 세상사람이 제자로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고,
Joh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열매를 많이 맺으면 예수의 제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Joh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오늘 본문은 더욱 분명하게 군중과 제자의 차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제자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의 제자의 삶으로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1. 첫번째 자리로 예수님 사랑하기
(눅 14:26, 개정)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가 자기 부모와 아내와 형제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축복까지 약속하시며 부모를 공경할 것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형제에 대하여 라가(바보)라고 욕하는 자는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딤전5:8절을 보면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을 미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미워하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미워하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실제적으로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헬라어로 미워하다는 말이 ‘미세오’인데 이 말의 실제적 의미는 ‘덜 사랑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본문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10:37절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10:37)
이것은 부모나 형제 자매를 인간적으로 미워하거나 버리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기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내가 사랑하는 것의 우선순위가 바르게 정해져야 합니다. 내 부모나 형제자매 때문에 주님을 등한시 하거나 멀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인간관계도 하나님 사랑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역설적 표현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우리는 내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각오를 해야합니다. 심지어는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모슬렘권에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성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것입니다.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과의 관계가 가장 친밀하고 가장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에 우리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사는 삶이요, 예수님과 친밀하게 말씀과 기도로 교제하는 삶이요, 예배자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살 때 우리는 온전한 구원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과 성령의 임재 가운데 기쁨과 감사가운데 살게 됩니다. 삶의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기도와 말씀속에서 그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함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 한분으로 충분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누구보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마르다를 책망하고 마리아를 칭찬했을까요? 열심히 봉사하는 마르다를 예수님이 책망한 이유는 우선순위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 섬기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마음이 분주한 상태에서 섬기는 것을 주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봉사는 하지 않았지만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를 칭찬하면서 한가지만 필요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가지가 무엇입니까? 주님과의 사랑하는 교제가 사역이나 봉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삶의 방향과 능력을 힘입어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역은 주님과의 친밀함에서 온다”
선교지는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삼는 목표는 동일합니다. 동일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재정의 어려움 등 다양한 고난과 고통스런 일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고 영적싸움도 매우 치열합니다. 제가 이러한 사역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저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택합니다. 무릎으로 사역합니다. 주님께 내 마음을 토하며 주님의 임재 앞에 머무는 것을 최우선 사역으로 삼습니다. 실제로 기도가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정말 모든 사역은 주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오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은 코람데오. 기본생활을 강조합니다. 기본생활표를 나누어주면 훈련도 합니다. 그 기본생활표에 기도는 몇 분했는지, 말씀은 몇장 읽었는지, 책은 얼마나 읽었는지 운동은 일주일에 몇번 하는지… 기본적인 예배자로의 습관을 만들도록 훈련합니다. 그런데 이 훈련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기도 말씀 등의 모든 교제시간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런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하는 삶의 축복은 풍성하고 능력있는 삶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면 부모, 처자, 형제자매, 자기 자신을 더 잘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제자입니까? 예수님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십자가
(눅 14:27, 개정)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인 인류구원을 위해 죽으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치러야 할 댓가와 희생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치러야 할 댓가와 희생을 말합니다. 각자의 역할과 위치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교회에서 주어진 직분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는 자가 예수의 제자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 즉 사명 부르심을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그러자 예수님이 갑자기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23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
예수님이 지적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생각, 베드로의 인간적인 꿈, 베드로의 가치관, 인생관 등이 모두 깨어지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무엇입니까? 다윗과 같이 군사적인 힘으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기에 죽어서는 결코 안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 자신의 생각, 계획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자기부인의 개념은 신앙생활에서 너무 기본적이고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 기분나쁩니까? 왜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납니까? 아직도 내 안에 육신적인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내 안의 타락한 자아가 죽는 만큼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기 때문에 날마다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는 일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 간단히 두 가지만 나눕니다. 첫째는
말씀에 근거하여 나의 교만한 자아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고 선포하십시오.
먼저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는 두번째 방법은 예수님처럼 게세마네 동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게세마네 동산에서 피가 땀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육신을 이기지 못하고 깨어서 기도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기도하면서 십자가를 체험하십시오. 성령님의 임재 안에서 내 계획, 내 생각들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아부인의 동산, 게세마네 동산에 날마다 올라가셔서 자아를 부인하고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십자가는 축복의 길이요 영광의 길입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없이 면류관없습니다. 십자가는 희생이요 힘든 것이지만, 자신과 남을 위한 축복의 길입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되 다른 사람의 십자가가 아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져야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만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가 져야할 가정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가 지고 가야만 하는 사명의 십자가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아십니까? 때로는 괴롭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 타협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제자입니까? 자신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주를 따르는 자입니다.
3.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눅 14:33, 개정)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의 소유를 버리라는 것도 결국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주인 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매 순간의 삶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소유를 문제 삼습니까? 소유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고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물질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소유를 버리라는 말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모든 소유, 지식, 은사, 능력,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어떻게 사냥하는지 아십니까?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원숭이들이 다니는 길목의 나뭇 가지에 열매를 넣은 다음 조롱박을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조롱박에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구멍을 뚫어 놓습니다. 원숭이는 조롱박에 들어 있는 맛있는 열매를 확인하고 그 속에 손을 집어 넣습니다. 그런데 그 조롱박의 구멍이 너무 작아서 열매를 움켜쥔 손을 빼내지 못합니다. 사냥꾼들이 몰려 오면 원숭이 자신이 쥐고 있는 열매를 놓고 도망을 가면 되는데도 원숭이는 그걸 붙잡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원숭이는 손만 놓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매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것을 붙잡고 있다가 그열매를 먹어 보지도 못한채 사냥꾼에게 잡혀가는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세계은행통계에 의하면 오늘날 전 세계에서 하루1.9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무려 1억명이 넘는 이들이 극심한 빈곤상태에서 생활하다가 죽어간다. 그들은 오늘도 하루에 1달러 남짓한 돈으로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 하루도 약 2만명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있습니다.
내가 DTS 훈련팀과 같이 인도의 콜카타(캘커타)지역에 전도여행했을 때 슬럼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세아이 네 아이, 다섯아이를 둔 가정들이 그 작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식수는 제한적이고 음식은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 빈민가가 몇 키로미터씩 늘어서 있다. 1, 2달러가 없어서 죽어가는 이웃이 바로 곁에 있음을 안다면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선택을 해야한다. 가진 것을 나눠주고 주님을 끌어안을 수고 있고 예수님을 외면한채 재물을 쌓을 수도 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어느 누구도 돈이 많아서 구제헌금이나 선교헌금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 덜 사용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많이 베풀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도에 대가가 필요함을 설명하기 위하여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망대의 비유이고 또 하나는 전쟁하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망대를 세우는 것이나 전쟁을 하는 것이 제자가 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망대를 세울 때 자신이 가진 돈이 충분한지 미리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건축부터 시작했다가 완성하지 못하면 망대도 세우지 못하고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건축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하려는 왕이 자신의 군대로 상대와 싸울 수 있는지 미리 따져보아야 합니다. 도저히 그가 전쟁에 승산이 없다면 그는 사절단을 보내어 화친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않고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다가 이기지 못하면 더 큰 화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건축이나 군사전략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감정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제자의 삶은 축복된 삶이지만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삶입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말씀을 마누리하겠습니다. 최근에 교단본부에 방문해서 교단목사님과 교제를 할 때 나에게 매우 궁금한 것이 있다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선교사역을 마무리하고 이민을 와서 목회를 하던 목사가 어떻게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해서 제가 답변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선교적인 목회를 하려고 선교하던 러시아에 두번째 방문했을 때 하나님이 말씀으로 강하게 도전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이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없다는 마음을 주시면서 러시아 영혼에 대한 강한 부담을 주셨습니다.
이민목회할 목회자들은 주변에 많이 있었지만 러시아에는 선교경험이 있는 내가 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주셨고, 새벽기도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때 주신 말씀이 “Ecc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곧 주님 앞에 설 텐데 주님 앞에서 잘했다 칭찬듣는 자로 선교지에서 복음전하며 제자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때 큰 아들이 12학년, 둘째 아들이 10학년이었는데 둘째는 미국을 떠나기 싫어서 부모님이 좋아서 떠나는 러시아로 울면서 따라갔습니다.
둘째아들은 선교사 자녀학교에서 학년당 학생이 10명도 되지 않는 학교에 다니면서 교회도 학교도 그 도시도 사랑하면서 살게 되도록 기도했는데 기도대로 그렇게 되었고, 유씨 버클리에 합격하여 러시아를 떠나기 싫어서 다시 울면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큰 아들은 혼자 12학년을 보내고 유씨 샌드에고 졸업후에 현재는 결혼 가족 쎄러피 대학원 과정 3학년을 곧 마쳐가게 됩니다.
8년전에 러시아에 갔을 때 선교사들끼리 팀사역하던 미르선교회에서 고려사람교회 사역을 4년동안 섬기게 되어 있었는데 3년 사역했을 때 주님이 강하게 사역을 내려놓을 것을 마음을 주셔서 사역을 내려놓고 난 후 일주일되는 때에 로스토프 지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이 전화를 해서, 자신이 비자거절로 인해 장목사가 로스토프로 내려올 수 있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로스토프에 2018년에 내려왔는데, 내려오자 마자, 선교센터 토지를 잘못사용했다고 1만달러 벌금이 나왔고, 20여년 전에 구입한 선교센터는 시설 수리가 되지 않아 난방장치, 화장실,소방시설, 지붕 수리와 비품등을 구입하고 2020년에 신학교 사역을 시작했고, 작년에 목자들을 세워 가정교회로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사역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며칠절 아내가 러시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다소 진지하면서 농담섞인 말을 들으면서 나도 가고 싶지 않다고 말대답했습니다. 얼마전에 모스크바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러시아에 여행하지 말라. 러시아에 있는 사람은 속히 러시아를 떠나라는 내용의 이메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것을 순종하도록 가르치라는 말씀과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러시아에 있는 영혼들을 전도하고 제자삼기 위해 내일 여권이 도착하면 수요일에 러시아로 떠납니다. 우리에게 있는 놀라운 복음인 예수님이 있기에 러시아 영혼들에게 이 복음을 나누고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기쁨으로 믿음으로 러시아로 달려가길 원합니다. 저희들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수고를 통해 전도의 열매가 있고, 예수님의 제자들로 세워지는 역사가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누가 제자인지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신다면,
누구보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감사와 기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의 소유와 열정과 달란트를 하나님나라를 위해 드리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되어 제자삼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