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려면….(민수기13:30-33)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주셨다. 믿음으로 차지하면 되는 상황이다. 하나님이 각 지파의 대표들, 정탐꾼 12명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다. 그리고 12명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보고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Num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Num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Num 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제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지만 할 수 없다고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했지만 안된다고, 들어갈 수 없다고 굳게 믿은사람들은,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한대로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가능하다. 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 보고하고 믿음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믿음으로 보고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의 본문은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 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정적인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부정적인 자아상을 버리고 창조적인 자아상을 회복해야 한다.
부정적으로 보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을 들어보라.
Num 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들은 자신들을 메뚜기로 생각하고 있다.
열 정탐꾼은 견고하고 장대한 거민들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고 자신들을 평가했습니다.
10명은 메뚜기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거인앞에 메뚜기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 땅을 점령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신을 메뚜기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거인 앞에 선 메뚜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거인이 밟으면 그대로 죽어버릴 수 밖에 없는 한없이 연약한 것이 거인 앞에 선 메뚜기의 모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메뚜기처럼 생각합니다. 자신을 별로 가치없고 귀한 사람도 아니고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낮은 자존감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왕자의 권세와 신분을 누리며 풍성하게 삽니다. 자신을 거지라고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궁핍의식과 가난의식속에 궁핍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아상대로 생각하고 그 자아상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오늘 10정탐꾼들은 자신을 메뚜기로 생각하며 하나님이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고 그 믿음대로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성이 견고하고 거민들이 장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하며 승리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결국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꿈과 사역을 주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놀라운 일들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메뚜기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고 할 수 없다고 믿고 실제로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냅니다.
오늘날 사탄이 사용하는 강력한 무기가 바로 낮은 자존감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의 저자인 ‘데이빗 씨맨즈’는 사탄의 가장 무서운 심리적 무기는 죄책감, 열등감, 불만족,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낮은 자존감’이라고 했습니다. –
심리적 무기가 죄책감, 열등감, 불만족, 그리고 낮은 자존감입니다. 낮은 자존감을 통해 사탄은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파괴하고, 대인관계를 해치며,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한다.
내가 누구인지 진정한 자화상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자화상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자화상을 갖기 위해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참된 자화상은 하나님께서 보는 관점에서 나를 볼 때만 가능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했기에 가능하다고 믿고 선포하며 나아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아야 합니다.
Gen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Gen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땅을 정복하고 섬길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엡 2:10, 개정)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For we are God’s workmanship)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드신 바라.
여기에서 “만드신 바”가 포이에마 즉 걸작품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서 시가 나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걸작품이다. 어떻게 회복되었는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 일- 삶의 목적-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 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죽게 할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존귀한 자들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고 나를 살릴 정도로 나는 가치있는 자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죽음이란 확신이 있는가?(사53:5)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귀한 자라는 확신을 갖기 바란다.
그러므로, 나의 가치는 ”나의 배움의 정도, 가정환경, 외모, 직업”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나의 가치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못된 가치기준을 갖고 있다. 돈이나 명예나 학력과 외모 등으로 가치를 결정한다. 세상사람들은 우리의 외모를 보고, 가진 것을 보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가치로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 물질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지 말라. 외모나 가정배경을 보고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지 말라.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귀한 자임을 확신하라. 십자가에서 나의 참된 자아의 가치를 발견해라.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일 정도로 나는 존귀한 자로 보고 있다.
미국 UCLA 연구팀이 엄마의 사랑을 꾸준히 받은 3세 아이와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사랑받지 못한 3세 아이의 뇌를 CT로 촬영하여 두 사진을 비교 분석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뇌는 크고 잘 발달된 반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뇌는 작고 검은 색깔을 띠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팀의 주장에 의하면, 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마약 중독이나 폭력 등 각종 범죄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또 정신적 질병이나 각종 다른 질병에도 더 쉽게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인지, 날마다 하나님 앞에 고백하시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내 자녀들을, 내 이웃들에게 존귀한 자로 여기고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의 자화상을 가진 사람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창조적 자아상을 갖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는 자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원한다면,
두번째로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고 긍정적인 태도와 감정을 가져야 합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매사에 부정적이 됩니다. 쉽게 분노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며 부정적인 감정에 붙잡혀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꾼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모두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거나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극단적인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반응을 불신앙이라고 말씀합니다. “언제까지 이 백성이 나를 믿지 아니하겠느냐 11절”고 말씀합니다.
최근에 어느 뇌를 연구하는 교수의 말을 듣게 되었는데, 우리에게 있는 많은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들, 분노, 절망감, 두려움, 염려 등이 있지만 실제로 하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하고 염려하고 원망하는 등 부정적인 감정의 배후에는 기본적으로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부정적인 감정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읽다보면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 정복을 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여러번 “왜 두려워하는냐”며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앞날이 두렵습니까? 귀한 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렵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십시오.
어떻게 두려움의 부정적인 감정을 이기고 긍정적인 태도와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십시오. 1Jn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지배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십시오. 그 때 모든 두려움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감사함으로 나아가십시오. 감사할 때 모든 불평과 원망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항상 어렵지만 감사를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감사하십시오. 특히 잠을 자기 전에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잠자는 동안 부정적인 것들이 나의 뇌를 지배하지 않도록 잠을 자기 전에 특히 감사기도를 하시고, 가족끼리 감사꺼리를 나누시는 습관을 갖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기적을 낳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늘의 평강으로 지키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어떤 부정적인 태도와 감정이 있다면 반드시 제거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시고, 감사를 선택함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부정적인 언어를 제거하시고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민 14:28, 개정)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말을 사용하든지, 하나님의 귀에 들린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선포하면 그 믿음의 선포를 보시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라는 이스라엘백성들의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대로 하셨습니다. 죽는 것이 좋겠다는 말한대로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라고 그들이 말한대로, 그들은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앞두고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과 어려움이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는 여호수아, 갈렙처럼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들은대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언어 자체에 권세가 있습니다. 말에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는 권세가 언에 있음을 알고, 우리는 믿음의 말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언어를 바꾸지 않으면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인생이 바뀌고 운명이 바뀔려면 말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이제부터 믿음의 말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민14:7)“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민14:9)“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먹이라 밥이요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히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
어떤 믿음의 말을 사용해야 할까요?
“바라는 것들(소망하는 것)의 실상을 말하십시오. 실상(실제, 사실)이 있고, 우리는 바라는 것들(원하는 것들)의 실상이 있다. 자녀를 보니 공부하는 것을 보니 싹이 노랗다(전혀 가능성이 없는 상태로 공부를 너무 못하고 있는 현실). 이것은 실상이다. 그러나 바라는 것들의 실상 즉 믿음으로 이 자녀가 커서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5만명을 먹여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고 믿음의 말을 사용할 수 있다. “너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 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제물로 삼기 위해 데리고 갔다. 그 때 이삭이 묻는다. 아버지,나무와 불은 있는데 제물은 어디 있나요? 실상은 이삭이 제물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말한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이 예비하실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말이다. 현실과 실상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자녀에 대해, 교회에 대해 믿음의 말을 사용하기 바랍니다.
나는 우리 희망교회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이 땅을 변화시키는 예수의 제자로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믿음의 자화상, 창조적 자화상을 갖도록 여려분의 자녀에 대해 부모님들이 믿음의 말을 사용하길 바란다.
자녀의 행위와 모습과 상관없이 자녀들 존재 자체를 인해 칭찬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라. “너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귀한 사람이다”. 언제나 아이들의 존재를 칭찬하고 존중하는 말을 사용하십시요. 이렇게 믿음의 말을 사용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받는 자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히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최고의 권세있고 능력있는 말은 예수이름으로 갖는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속에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약속과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그냥 가서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게 주신 사명과 비전들이 있습니다. 그 비전과 사명 앞에는 거인도 있고 정복해야 할 산성 등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들을 보는 눈입니다. 나를 보는 자아상이 병들어 있으면 쉽게 포기하고 결국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자화상을 갖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라는 믿음과 창조적인 자화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메뚜기라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소중한 존재요 주님이 죽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원하십니다. 환경을 보고 원망이나 불평이나 두려움을 버리시고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가장 좋은 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장애물, 문제를 향해 선포하세요. 믿음의 말을 사용하세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믿음의 말을 사용합시다. 부정적인 것들을 벗어버리고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