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5-19

저희가 안식년 본국 사역을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설교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오늘의 말씀은 나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한 특별한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삽니까?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인간은 사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도록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우울하고 불안한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면 사람에게는 병이 생기게 됩니다. 처음에는 마음의 병으로 공허감과 슬픔과 고독 같은 마음의 병이 되다가 점차 신체적 질병으로 연결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병의 근원은 사랑이 없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담실을 찾아와 울며 마음의 아픔을 호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핵심 주제는 ‘사랑에 대한 갈증’입니다. ‘사랑없음’이 사람의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 사랑은 이렇게 우리의 깊은 병을 치료해 줍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 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치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우리는 치유자로 살게 됩니다. 사랑받는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자존감과 안전감이 높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 사랑의 힘이 내 안의 깊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이렇게 사랑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식사한 후에 베드로와 단 둘만이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 양을 치라’ 말씀하셨고, 세번째도 동일하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후에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을까요? 주님이 오늘 나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동일한 질문을 하시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하신 질문은 첫째 베드로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신 이유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낙심해 있던 베드로의 상한 마음을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사도직에 대해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던 당시 성도들의 오해를 해소시키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실추된 베드로의 권위와 사명이 어떻게 회복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베드로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잃어버린 권위를 회복했나요? 오늘 본문에서 주님의 두 가지 중요한 치유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상처를 대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아픔을 보게 했습니다. 숯불 앞에서 3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숯불 앞에서 3번 질문함으로   간접적으로 아픈 상처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반석이라는 이름인 베드로 대신에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 베드로의 연약함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간접적으로 베드로의 실수와 상한 마음을 보게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병을 숨기기 때문입니다. 술중독자가 술중독으로 치유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술중독으로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도움을 구할 때 치유가 가능합니다. 아픔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입니다. 상처는 누군가 경청해 주고, 마음으로 공감해 줄때, 조금씩 아물게 됩니다. 약5:16,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인 영적인 가족인 가정교회의 멤버끼리 마음의 깊은 아픔, 슬픔, 감정들을 나누는 것은 치유를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신뢰하는 영적 가족, 목장식구들에게 자신의 속 마음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베드로의 상한 감정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단계로, 주님은 사랑으로 베드로를 치유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주님은 어떤 사랑을 보여주셨습니까? 섬기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밤새 고기잡으며 지친 제자들에게 따뜻한 숯불을 준비하셨고, 떡과 생선을 구워서 배고픈 제자들에게 아침을 제공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제자들의 마음의 문이 열렸고, 모두들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통해 주님의 용서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베드로의 실수 한 것을 다그치거나(책망하거나) 묻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불편하고 상한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3번 질문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가장 어려울 때 배신했던  그였지만  예수님의 질문을 듣는 그 순간 그는  자기를 향한 예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가슴 저리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3년동안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다시금  그의 영혼 속에 남아 있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불씨를 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사랑을  3번이나 고백하면서 베드로의 상한 마음은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입었던 깊은 상처가 아물고  있었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쳐있고 때로 마음이 상한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를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은 바로 십자가의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언제 치유되고 회복됩니까? 언제 내 인격이 변화됩니까? 주님이 자신의 생명을 주고 나의 죄를 용서했고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 우리는 치유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요 존귀한 자임을 확신할 때 우리는 변화됩니다.

지쳐있습니까? 피곤하십니까? 상한 마음이 있으십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베드로를 치유한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채찍에 맞아 살점이 떨어져나갔고 가시면류관을 쓰셨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숨이 막혀 숨쉬기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아버지께 버림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이 버림받고 거절받음으로 내가 용서받고 용납되었음을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그 귀한 보혈을 믿음으로 정말 내 죄가 용서되었고 내가 의롭다함을 받게 된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상한 마음과 육신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치유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여러분, 지금 주님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치고 마음 상해 있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묻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냐? 여러분,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은 뜨거운 열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을 때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주님,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그 사랑이 우리의 상하고 지친 마음을 고치실 것입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난 새힘을 주실 것입니다. 

두번째로 주님이 베드로에게 반복헤서 사랑하느냐고 질문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랑으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아내가 남편에게 3번이나 “당신 나를 정말 사랑해요” 질문을 한 다음에 어떤 일을 3번이나 부탁한다면, 그것은 정말 사랑으로 부탁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3번이나 질문한 다음에 베드로에게 동일하게 3번이나 말씀한 것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신 후 주님은 곧바로 베드로의 영혼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사명과 직분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만큼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만큼 다루기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귀한 영혼을 다루는 일을 아무에게 맡길 수없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영혼을 주님은 누구에게 맡깁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혼들을 맡깁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격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상황적으로 기도의 집에서 훈련받도록 허락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국제기도의 집의 24시간 기도하는 기도실에서 주일 아침에 기도할 때의 일입니다. 평일의 드럼과 전자기타 등 열정적으로 찬양하던 때와 달리 그 날 주일 이른 아침은 찬양팀들이 바이올린, 첼로 등 부드러운 악기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찬양의 가사도 대부분 아가서의 내용이었고, 그 때 저는 아가서 4장을 펴서 읽으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주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니엘아, 내가 너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아름답게 생각하는지 아니? 너는 흠이 없단다’아가서4장 전체 말씀의 구절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내가 너 때문에 마음을 빼앗겼단다’. 그리고 동시에 스바냐3:17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나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는 분명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당시 내게 있던 사역의 문제, 재정적인 어려움, 박사학위 논문작성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어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답답함과 무거웠던 것들이 눈녹듯 사라지고 동시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자유함이 마음속에 흘러넘쳤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제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서4장을 통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는 신랑되시는 주님을 새롭게 만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 가운데 주님은 사역보다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원하신다는 선명한 메시지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남편(렘3:14, 사54:5)으로 계시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가들겠다고 하셨고 그 때 여호와를 알게 될 것(호2:19-20)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부관계처럼 이 세상의 누구보다는 친밀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가까운 사이가 부부관계입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는 부부가 한 몸이듯이 하나되는 비밀스러운 신랑과 신부의 관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엡5:31-32).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가깝고 친밀하며 사랑하는 관계로 바라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뜨거운 사랑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너무 귀한 영혼을 섬기는 목자의 사명을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감당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양한 사역과 봉사로 열심을 내지만 주님은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한가지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그 사랑으로 주님이 주신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오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질문하시는 이유는

사랑으로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베드로의 장래로 놓고 대단히 진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옷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리고 너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19절에서 요한은 이 말씀이  베드로의 죽음을 예언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내일을 염려하지 말고, 그저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베드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전해 오는 전설에 의하면 십자가에 순교하게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못 박혀 죽겠습니까? 나를 거꾸로 매달아  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흰 백발을 휘날리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여기 매우 중요한 메세지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내일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있지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루 하루 순간순간 주님을 따라 갈 때 나는 원치 않지만 성령께서 원하는 곳으로 인도하시고 결국 영광스러운 죽음의 자리까지 인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아주 단순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그저 따라가면 됩니다. 오늘 주님 사랑하며 나아갈 때 순교의 자리에 까지 인도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적용할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순교의 길,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을 갈 수 있는지 알려주십니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린다. 십자가없이 영광없다’는 말입니다. 나의 생각, 내 욕심, 자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말씀앞에 아멘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도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다니는 사람이지만 성숙한 사람은 내가 원하지 않지만 주님이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에서 순간순간 죄에 대해 자아에 대해 죽고 예수로 사는 은혜가 날마다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으로 사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경험하는 시간이 바로 기도시간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기 전에 겟세마네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자기부인의 시간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시간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그 때 주님은 우리의 길을 아버지의 뜻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희가 이곳에 선교사로 온지 5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이곳에서 있었습니다. 교회건물과 연관해서, 관계안에서, 사역안에서 일일이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정말 치열한 영적전투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교회건물 수리를 했어야 했고, 주님은 성경대학을 통해 교회리더들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능력으로 성도님들이 건강하게 세워진 것을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안식년을 위해 잠시 이 도시를 떠나지만, 주님은 저에게, 여러분에게 오늘 설교를 통해 귀한 진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지만, 오늘 주님은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그 사랑으로 주님의 양을 먹이는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그 사랑으로 주님께 영광돌리는 길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참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따라갈 때 우리 모두를 통해 반드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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