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자녀의 권세(요1:1-3,10-14)
우리교단의 유명한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가난한 시절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임영재 목사님이 가난한 동네 한 할머니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집사님은 혼자서 파출부 일을 하면서 어주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너무 가난해서 추운겨울에 연탄을 때지 못한 차가운 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방 벽은 도배를 못하고 신문지로 발라서 그렇게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후에 임목사님이 벽을 쳐다보았는데 잘 보니, ‘은행수표’가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진짜 수표인데, 그 가격이 서울에서 집을 한 채 사거나, 이 돈을 은행에 저금해 두고 이자만 가지고도 이 집사님이 죽을 때까지 살고도 남는 아주 큰 액수였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어디서 이 수표를 얻었냐고 물었더니
“작년에 저 옆 집에, 부인도 없고, 자식들은 모두 바빠서 아버지 병간호를 못하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제가 그 분 병 간호를 몇 년 해 드렸지요.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날 부르더니 제 손에 저것을 쥐어주면서 잘 간직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 어르신은 얼마 후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가 잘 간직하라고 하셨기에, 어디다 두기도 뭐하고 그래서 기념으로 벽에 붙여 두었어요”
그래서 임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아이고, 집사님, 이거 큰돈이에요. 엄청나게 큰 돈이에요. 이 돈이면 집도 사고, 연탄도 사고,쌀도 사고, 집사님 끼니 걱정 안하고, 평생 파출부 안해도 될 큰 돈이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교인들을 통해서 은행 수표로 늙은 집사님의 집을 구입하고 저금하고 이자로 그 집사님이 생활하시게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늙은 집사님은 그녀자신이 집을 사고도 남을 엄청난 돈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추운겨울에 연탄불도 못 피우고 매일 끼니 걱정하면 약한 몸으로 매일 파출부 일다니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부자처럼 살 수 있었는데 실제로 거지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사용하며 풍성하고 의미있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어져 있지만 영적으로 가난하게 어렵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은 백투 베이직 시리즈 첫번째 말씀으로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면 지진이 나도, 홍수가 나도 그 건물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며, 내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갖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이 예수님을 누구라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
오늘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은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역사 가운데 들어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누구라 생각합니까?
교회역사를 보면 기독교 초기의 교회 공의회에서 여러번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토론이 있었고,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면 이단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아들 예수님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이 계시며 성령 하나님 즉 하나의 하나님이시지만 아버지, 아들, 성령의 세 인격으로 존재한다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예수님은 선지자 중의 한명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단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믿지만 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영지주의라는 대표적인 이단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이원론을 믿었고, 그러므로 예수님이 악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지 않았고 육체를 입은 것 처럼 보였다고 주장했고, 신비한 지식을 얻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영지주의 이단이 있는 상황에서 요한사도는 요한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 1-18절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선포하며, 7개의 특별한 예수님의 이적과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통해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1-3절을 읽겠습니다.
Joh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Joh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Joh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여기에서의 ‘태초에’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와는 다른 영원전의 태초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은 영원하신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이심을 1절에서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즉 예수님은 창조주입니다.
Heb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Col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선포합니다.
Joh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Joh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창조주가 이 세상에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사야 9:6,7
Isa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Isa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 아이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평강의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바로 이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아기가 되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처녀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Isa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4절을 읽겠습니다.
Joh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 곧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거하신다는 원어의 의미는 천막을 친다는 의미이다. 구약에 하나님께서 천막으로 이스라엘백성과 함께 하셨듯이,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함께 살게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과 동일한 성품을 지닌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자신은 어떻게 자신을 설명했을까요?
Joh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Joh 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Joh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Joh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Joh 8: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Joh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Joh 8: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Exo 3: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Exo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예수님 자신이 자신은 아버지와 하나이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며, 나는 스스로 있는 여호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셔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특별하게 7개의 표적이 있습니다.
1. 갈릴리 가나의 혼례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2:1~11)
2. 갈릴리 가나에서 가버나움에 있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심 (4:46~54)
3. 예루살렘에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심 (5:1~9)
4.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심 (6:1~13)
5. 바다 위를 걸어 오심(물 위를 걸으심) (6:16~21)
6.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심 (소경을 치유하심) (9:1~41)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11:1~44)
이러한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고, 죽음에서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하신 하나님이시며, 완벽한 사람입니다.
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용서하기 위해- 죽기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되나요?
12절을 읽겠습니다.
Joh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함으로 가능합니다.
무엇이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죄입니까? 죄는 내 마음대로 내가 주인노릇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주님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내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세주로 나의 마음속에 모여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바로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내 죄를 용서하신 것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나의 마음속에 초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록3:20말씀에서 우리를 초청합니다.
Rev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약속의 말씀대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면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됩니다.
예수의 이름 곧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권세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권세를 말합니다.
아주 힘과 능력이 있는 큰 트럭도 정부의 권위가 주어진 교통경찰이 차를 세우면 멈추어야 합니다. 교통경찰에게는 정부에서 주어진 권세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자동차도 아무리 힘이 세어도 경찰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와 권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기에 예수이름으로 명하면 귀신은 떠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습니까?
결혼은 사회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여러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결혼하면 싱글에서 신분이 한 여자의 남편으로 바뀌게 됩니다. 부부사이에 생명의 탄생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내 마음속에 영접하면 신분이 바뀌며 영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가운데
-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의 권세입니다. 이 권리는 단순하게 말하면 자녀의 권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자녀요, 마귀의 자녀였던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로서의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입니다.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Rom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둘째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자녀의 권세는
아버지에게 간구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즉 기도로 우리의 필요를 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늘 아버지께 우리의 필요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기도하면서 간구하면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Joh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Joh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Joh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우리가 기도하고 하늘 아버지가 응답해 주심으로 하늘 아버지께 영광돌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요즘 가장 힘든 문제가 무엇입니까? 염려하지 마시고, 아버지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세째로 우리가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권세는
아버지와의 친밀함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관계에 있습니다. 나를 창조하셨고, 내 인생을 이끌어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 살 때 이 어둡고 외로운 세상에서 참된 안식과 행복과 평강을 누리며 살수 있게 됩니다. Rom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바는 아빠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가 나를 존재케 했다. 그가 나를 인도하신다.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본질적인 특권을 놓치는 것이다. 집안에 돈이 있어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들 다 사주더라도, 아버지와 친밀감이 없어 함께 앉아 대화하는 시간도 없고 서로 사귐의 기쁨이 없다면 더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자녀로서 아버지와 깊은 사귐에 대한 놀라운 행복을 약속하고 있다. 사람은 인격적으로교제할 때 큰 기쁨을 누리게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종이 주인을 무서워하듯이 하나님을 무서워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사랑받는 아들이 하듯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즐거워하게 하신다고 한다. 어린 아기가 아버지를 향해 부르는 이름이다. 여기에는 품위나 체면을 찾아 볼 수 없다. 힘들고 외로울 때 “아버지!” 하고 좋으신 하나님을 부르라. 그리고 그 임재의 기쁨과 평강안에서 공부하고 일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권세 가운데 아버지와의 친밀함의 권세와 축복을 늘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넷째로 우리가 자녀의 권세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자녀의 성품의 권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빛이시다.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우리는 빛의 자녀이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는 성품과 능력이 있다.
Eph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Eph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는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1Jn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에게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마귀는 거짓말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영입니다. 마귀는 교만하며 속이는 자입니다. 마귀는 어둠의 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정직할 수 있고, 정죄나 비판이 아니라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겸손합니다. 우리는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고, 축복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며 희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있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신앙의 기본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힘들고 혼란의 시기에 우리는 상황과 상관없이 자녀의 권세와 능력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힘든 환경이지만 환경을 이기며, 기쁨과 평강 가운데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 자녀로서 어두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Joh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지만 우리 가운데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신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권세를 날마다 누림으로 이 힘들고 험한 세상에서 풍성하고 기적같은 놀라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