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본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요12:1-8, 호6:6)
제자의 삶 시리즈 설교를 지난 주에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제자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자기부인의 동산인 게세마네동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삶이 요구된다고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날마다 자기부인의 동산에 올라갔었습니까?
오늘은 제자의 삶 시리즈 두번째로, 신앙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Luk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위해서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첫자리로 사랑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세계 3대 피자 회사로 피자헛, 도미노, 리틀 시저스를 꼽습니다. 이 세 회사는 저마다 독특한 판매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피자헛은 ‘다양한 메뉴’를, 도미노는 ‘남보다 빠른 배달’을, 리틀 시저스는 ‘싼 가격’을 판매 전략으로 내세웁니다. 그런데 ‘파파존스’라고 하는 회사가 한 때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파파존스는 많은 피자회가가 있었지만 성공을 한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파파존스의 성공의 비결은 피자의 본질인 맛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피자의 본질은 맛입니다. 좋은 재료와 최고의 맛이면 충분합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은 호세아6장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하나님은 제사나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큰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네몸과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체험하며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아는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이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십니까?
요한복음 12장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약 일주일전에 죽었다가 살아난 동생 나사로 집에 예수를 위한 잔치가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도 식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던 중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그 때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습니다.여기에서 순 나드 한근은 삼백 데나리온은 즉 노동자의 일년 품삯 즉 40-60만루블에 해당되는 매우 비싼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수님의 장사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이라며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예수님에게 60만루블가치의 향유를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이해가 됩니까? 아니면 유다처럼, 그 돈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더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마리아가 어떻게 이렇게 귀한 것은 주님께 부어드릴 수가 있었을까요?
마리아가 어떻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릴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녀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동생 나사로를 살릴 때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개정)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7, 개정)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지금 마리아가 향유를 붓고 있는 분이 누구로 믿고 향유를 붓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메시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 무엇을 드린들 아까울 것이 있을까요?
가룟유다는 예수가 하나님이신 것이 보이지 않기에, 믿어지지 않기에 귀한 향유를 드리는 것이 아까워보였던 것입니다. 유다가 마리아의 향유를 부은 것을 아깝게 여겼다는 것 자체가 바로 유다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한다면, 그 무엇을 전능자 하나님께 드린들 아까워 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정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났는지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의 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께 구별된 시간을 드려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하나님으로 만났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결코 일요일 예배시간을 우습게 생각하거나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여기의 마리아의 행동을 통해서 신앙생활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었던 자기 동생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인해 깊은 감사와 함께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예배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원래 예배라는 말에는 프로스쿠네오 라는 헬라어가 있는데 “무릎 앞에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다. 입맞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모습은 예수님을 향해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예배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메시야로 알았기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주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성령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을 더욱 사랑하고 경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더욱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호세아서 6장은 우리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 여기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는 말은 “여호와를 알기 위해 열심으로 달려가자”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을 알기 위해 열심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치지 않는 갈급함과 열심으로 주님을 향하여 나가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잠언 2:4-5은 말합니다.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여기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우리들이 예수님을 구하되,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처럼, 그분을 구하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집에 조상 때 숨겨진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온 집 안을 다 뒤질 것입니다. 그 보물을 찾기까지 모든 관심과 신경이 거기에 집중될 것입니다. 어쩌면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몰래 밤에만 작업할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자세로 주님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그는 십자가만 알기 원했다합니다.
고린도전서 2:2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3:7-10).”
바울은 영적인 모든 것을 다 경험한 후에도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하는 것을 그의 일관된 소원이요 목표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그는 주님을 더욱 알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아는 지식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을 더욱 알고, 그분을 더욱 사랑하는 것을 당신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 4:8)고 약속하신 그대로 주님께서 당신에게 가까이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둘째로, 지혜와 계시의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 기도는 불신자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에베소서 교인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더 알게 해달라는 기도이며,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겸손히 성령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시고, 빛을 비추어주시면 더욱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을까요? 물론 자기 동생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보고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동생 나사로를 살릴 때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5-27)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역사하면 그 뜻의 의미를 알게 해 주고 점점 더 하나님을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이신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가까이할 때마다 겸손히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이 가까이 하는 말씀이 살아있는 레마의 말씀의 되게 하고, 영혼의 양식이 되고, 여러분의 믿음의 성장하게 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계시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부터 시작하게될 작은 예수 생명의 삶 과정에 여러분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Joh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성도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방울이 아니라, 가득한 향유가 예수님의 발에 부어졌습니다. 그 때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몇 방울의 향유도 아름다운 향기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그 많은 향유를 깨뜨려 주님께 부었으니 그 집안에 향유냄새가 얼마나 충만했을지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향유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나의 교만한 자아가 깨지기 전까지는 내안에 계신 예수님이 향기로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잔치하는 나사로의 집에는 사람이 많으니까 땀 냄새, 퀴퀴한 냄새, 또 음식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었는데 옥합을 깨뜨리는 순간 그 나드 향유가 온 집안에 향기를 진동해서 모든 퀴퀴한 냄새는 다 사라지고 향기로운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고집이 깨어지고, 교만이 깨어지고, 불순종이 깨어지고, 내가 주님 앞에서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으로 바꿔질 때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나서 우리를 덮고 있는 모든 흑암의 세력들을 다 제하여 버릴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있는 예수가 향기로 나타나면 모든 인간적인 냄새들이 다 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탐욕과 교만과 미움과 분노의 냄새들이 다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와 치료의 냄새가 내 삶에, 내 주위에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집안이, 우리 교회가 이렇게 주님의 아름다운 겸손과 사랑의 향기만 가득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영국에 캐리(Carey)라고 하는 부호(富豪)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죠지(George)와 윌리엄(William)이라고 하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고,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기대가 컸습니다. 그의 기대대로 큰 아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사업수안도 있어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소위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이죠. 그런데 장래가 촉망되는 둘째 아들이 느닷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사로 인도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 강력하게 만류했습니다. 왜 하필 선교사냐! 왜 보장된 성공을 뒤로하고 미개인, 야만인들 속에서 한평생을 살려고 하느냐! 모두가 말렸지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생각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이것이 ‘현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W. Carrie)가 선교지로 떠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두 사람 다 죽었고, 「대영백과사전」에 두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무려 한 페이지 반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 그 형 죠지에 대해서는 ‘윌리엄 캐리의 형’이라고 하는 말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참된 성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라해 보이고 어리석고 실패한 것같이 보이지만 본질을 선택한 사람이 진정한 성공자라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본질을 벗어나면 성공 같지만 실패한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서, 세속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책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면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엇이든 본질이 바로 서면 다른 것들도 바로 서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신자가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의 본질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그 누구보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자신의 향유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그랬듯이, 계속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 알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제자의 삶을 사는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