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죽어야 산다 – 부활의 능력으로

고린도전서 15:55–58 (러시아부활절설교, 2026년 4월 12일)

서론

흐리스토스 바스크레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력함을 느낍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도 죽음 너머의 허무를 채울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부활 장’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확신에 찬 어조로 노래합니다. 부활은 막연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팩트이며,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넘어 현재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부활의 동력을 뜨겁게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 과거의 부활 — 역사적 사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 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확증합니다(고전 15:3–4).

부활의 역사적 증거를 몇 가지 살펴봅시다.

•   무덤 입구를 막았던 1,500kg의 무거운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습니다.

•   세마포와 수건은 가지런히 개어 있었습니다. 시신을 도적질했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증인이 매우 많고 다양했습니다. 베드로, 열두 제자, 야고보, 그리고 한 번에 오백 명 이상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부활을 처음 목격한 자들이 당시 법정에서 증언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날조된 이야기라면 의도적으로 삭제되었을 내용입니다.

•   예수님의 죽음 이후 완전히 변화된 제자들의 삶이 부활을 가장 강력하게 증거합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없이는 교회도, 복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갈 2:20).

만약 부활이 없다면?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우리의 전파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고전 15:14, 17). 그뿐 아니라, 만일 이생에서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고전 15:19). 부활 사건은 결코 만들어낸 이야기나 신화가 아닙니다. 이 부활의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미래의 부활 — 우리도 반드시 부활합니다

고전 15:2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구약에서 첫 열매란 수확 전체를 대표하며, 장차 거둘 결실을 암시합니다. 즉,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몸은 이렇게 변화됩니다:

•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합니다 (고전 15:42)

•   영광스럽고 찬란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고전 15:43)

•   신령한 몸, 곧 초자연적이고 중생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고전 15:44)

•   병들지 않고 슬픔도 없는 강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몸으로 변화됩니다 (고전 15:54; 살전 4:16–17)

성경은 이 변화가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짧은 순간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5:51–52). 이는 신앙의 세계에 관한 거룩한 신비입니다.

육신의 죽음이란 잠시 대기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먼저 천국에 들어가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 대기하다가, 재림 시 새로운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에게 이런 영광스러운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3. 현재의 부활 — 오늘 부활의 능력을 누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 57)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의 독침을 뽑아내셨고, 부활하심으로 죽음과 죄와 율법의 세력을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승리한 자들입니다.
 

죽어야 산다 — 자아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

복음의 핵심은 ‘죽음과 부활’입니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으며, 자아가 죽어야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자아(ego)란 내 뜻, 내 고집, 내 감정, 내 자존심, 내 방식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통치를 방해하는 ‘나 중심의 왕국’이며, 이 자아가 십자가에 죽어야만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역사할 수 있습니다. 자아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기에, 매일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고 비난할 때, 자아는 반박하고 싶어합니다. 상처를 받으면 복수하고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바로 이 순간, 내 생각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께 그 마음을 드리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용서할 마음, 이해하는 마음, 참된 평강을 부어주십니다.

고난은 자아를 깨뜨리고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귀한 기회입니다. 금식 또한 육신의 자아를 약하게 하고 영을 강건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자아가 죽는다는 것은 염려와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순간순간 말씀이 내 생각과 삶을 주관하도록 나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11)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후 12:9). 부활의 능력은 내가 약함을 인정하고 자아가 죽을 때, 능력의 주님을 의지할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죽음을 통해 나타납니다.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긴 부활 장을 마무리하며 바울이 결론으로 전하는 말씀은 단 하나입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 왜냐하면 주님의 일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반드시 열매와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는 아버지 앞에 설 날이 있고, 그 날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바로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의 일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주님이 나를 통해 행하시는 모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기십시오. 주님이 주신 힘으로 공부하고 일하십시오. 사랑하는 자녀를 주님의 힘으로 양육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기 원하십니다. 올해 내 삶 속에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전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애리조나에서 ‘Door Church Tucson’을 섬기고 계신 해럴드 워너(Harold Warner) 목사님의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그는 23살, 아직 어린 나이에 목회자로 첫 사역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고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비가 내린 도로에서 차가 미끄러지며 굴러 떨어졌고, 차 지붕이 찌그러지면서 척수가 손상되어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그는 평생 휠체어에 앉아 살아야 하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절망과 원망, ‘왜 하필 나에게…’ 하는 자아의 강한 목소리가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 자아와 제 계획과 제 실패에 대한 원망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주십시오. 제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제 안에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사고 후 불과 9개월 만에, 그는 휠체어를 타고 새로운 교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거리 전도와 퍼레이드에도 참여하고, 병원과 가정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비된 몸으로 더 뜨겁게 주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의 소망을 얻었습니다.

해럴드 워너 목사님은 지금도 휠체어를 타고 활기찬 목회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그는 자신의 간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실 그 사고로 제 자아가 죽었습니다.

내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제 안에 더 강하게 사시기 시작했습니다.

육신의 마비는 끝이 아니라, 진짜 부활의 능력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나누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죽어야 산다.

자아가 죽을 때, 부활의 능력이 속에서 기쁨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강력하게 임합니다.

과거에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미래에 우리가 부활할 것이며, 바로 오늘, 우리가 매일 자아를 십자가에 목박을  때 그 부활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오늘도 이 능력을 믿고 의지하며,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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