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돌파(여호수아 6장 1-11)

우리가 오늘 직면한 현실은 성경 속 여리고 성처럼 “굳게 닫혀 출입하는 자가 없는(수 6:1)” 절망적인 상황이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일지 모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제 끝이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라고 느껴지시는 분이 계십니까? 사방이 우겨쌈을 당한 것 같은 답답함 속에 계십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절망’이 아닌 ‘소망’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이 거대한 벽은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돌파(Breakthrough)’란 무엇입니까? 나의 애씀으로 벽에 작은 구멍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돌파는, 내 힘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어 그 견고한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으신가요? 오늘 말씀을 통해,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전략으로 인생의 막힌 담을 허무는 ‘돌파’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1. 하나님의 약속이 돌파의 시작.

첫째로, 돌파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해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완벽한 ‘단절’이고 ‘거절’이며,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 철옹성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2절입니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여기를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줄 것이다(will give)”라고 미래형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넘겨주었다(have given)”**라고 완료형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아직 전쟁은 시작도 안 했고, 성벽은 그대로 서 있는데 하나님은 ‘이미 끝났다, 이미 너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돌파는 눈앞의 캄캄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를 완료해 놓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여러분의 여리고 성은 무엇입니까? 가정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꽉 막힌 재정이나 건강의 문제입니까? 사역의 길이 막혀 답답하십니까?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엿새 동안 매일 성을 한 번씩 돌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형(Formation)’**입니다. 무장한 군사들이 앞서고, 일곱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불며, 그 뒤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따르게 해야 합니다.

둘째, (10절)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엄명했습니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셋째, (4-5절)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 때, 그 신호에 맞춰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은 이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했고, 돌파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돌파와 변화를 위해서 먼저 내 방법, 내 계획을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그 때 돌파가 시작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어떤 돌파가 일어났습니까?

  • 베드로를 보십시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빈 배’의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 의지했을 때, 그 빈 배가 만선의 기쁨으로 돌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돌파와 변화를 위해서 먼저 내 상황에 맞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저에게도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목사로서 사랑하는 성도 곁에서 함께 사역할 수 없는 상황, 로스토프 공항으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등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저의 여리고 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상황에서 상황을 보지 않고 말씀을 붙듭니다.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대하 20:15)”,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이 말씀이 저의 소망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여리고 성 앞에서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들어야 할 주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상황은 변하지 않을찌라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면, 여러분의 돌파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본론 2: 예배자로 매일 성을 행진하라.

둘째로, 돌파를 위해서는 예배자로 매일 성을 도는 일상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여호수아 6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제시하신 ‘여리고 돌파 전략’은 세상의 군사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예배 의식’과도 같습니다. 그 행진의 대형을 주목해 보십시오.

가장 앞에는 ‘무장한 선두’가 섭니다. 이는 영적 전쟁을 위한 거룩한 준비 태세를 의미합니다. 그 뒤를 이어 ‘일곱 양각나팔을 든 제사장들’이 따릅니다. 그들은 공격 신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평화의 나팔, 희년의 나팔을 붑니다. 그리고 그 행렬의 정중앙, 가장 중요한 자리에 ‘언약궤’가 위치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마지막으로 ‘후군’이 뒤를 따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완성합니다.

여러분, 이 그림이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성을 공격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언약궤)를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행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은 앞으로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 정복의 동일한 영적 원리를 보여줍니다. 이 전쟁은 바로 하나님이 주관하는 영적전쟁이라는 것입니다. 5장에서 보여주신대로, 거룩한 전쟁이요,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는 전쟁임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의 여리고 앞에서 날마다 우리도 성의 벽의 금이 가는 것이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예배자로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행진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정적인 입술을 제어하고 ‘침묵’해야 합니다. 10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고 엄명합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게 하셨을까요?  하루를 돌고, 이틀을 돌아도 성벽엔 금 하나 가지 않습니다. 이때 만약 입을 열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야,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이렇게 해서 성이 무너지겠어?”, “다섯 바퀴째인데 아무 변화도 없잖아!” 온갖 부정적인 말과 불평, 인간적인 계산이 전염병처럼 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입을 막으신 것은 불신앙을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돌파가 일어나기 전까지, 불평의 말을 멈추십시오. “안 된다, 힘들다”는 말을 멈추십시오. 기적은 믿음의 침묵 속에서 잉태됩니다. 환경을 보지 말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베드로가 풍랑을 볼 때는 빠졌지만, 주님을 볼 때는 걸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들은 오직 나팔 소리만 들어야 했습니다. “나의 생각은 멈추고, 하나님의 약속만 들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삶의 중심에 ‘언약궤’를 모시고 걸어야 합니다. 여리고 행진의 대열을 보십시오. 무장한 군인들, 제사장들, 그리고 그 중심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바로 ‘여호와의 궤(언약궤)’였습니다. 11절을 보면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니라”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이 행진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 성을 포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돌파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언약궤)을 모시고 문제 가운데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그 문제를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주관자이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미물인 참새 한 마리조차 하나님이 통제하신다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하나 하나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일어나지 않는 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성벽에 금이 갔는지 확인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왜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 문제만 집중하지 마십시오. 대신 내 삶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궤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우리가 예배자로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루를 살아낼 때,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때에 여러분의 여리고는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가 누리는 진정한 돌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일상 속 여리고 행진에 ‘언약궤’가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십시오. 찬양함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말씀읽기 속에서 거룩함에 머무십시오. 내 안의 더러운 신을 벗음으로 거룩함을 유지하십시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삶의 가장 중심에 모시고 묵묵히 믿음으로 행진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매일 우리의 여리고 성을 돌아야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는 돌파의 핵심메세지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임재속에 예배자로 오늘의 일상속에서 믿음으로 행진하라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여기에 지치고 피곤하고 두렵고 답답한 일상을 돌파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광야속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백성과 함께 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속에 우리가 예배자로 오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돌파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리고 성에 금이 가는 것조차 보이지 않아 두렵습니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을 것입니다. 절망감과 염려가 있습니까? 주님의 임재안에 하늘의 기쁨과 평강이 함께 합니다. 주님의 기쁨과 평강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십시오. 아무리 바빠도 주님보다 말씀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주님의 임재의 기쁨, 주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곳 에스토니아에서 저만의 여리고 성을 매일 믿음으로 돌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집안에서 지내지만, 답답한 환경을 보며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제 삶의 중심에 언약궤를 모십니다. 깊은 기도 속에서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갑니다. 말씀을 읽으며 주님과 동행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처럼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기도로 전진’하며,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일상 속 여리고 행진에 ‘언약궤’가 있습니까? 기도를 통해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십시오. 찬양함으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말씀읽기 속에서 거룩함에 머무십시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삶의 가장 중심에 모시고 묵묵히 믿음으로 행진하십시오. 


[본론 3: 돌파는 하나님의 때(Kairos)에 일어난다 (6:15-16)]

마지막 셋째로, 돌파는 인간의 타이밍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일어납니다.

믿음의 절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주님도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엿새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일곱째 날이 밝았습니다. 이날은 일곱 바퀴를 돌아야 합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어제도 안 됐고, 그제도 안 됐는데… 오늘 7바퀴 돈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러나 돌파는 ‘임계점’을 넘을 때 일어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을 기억하십니까? 나병을 고치기 위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한 번 씻었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세 번, 다섯 번, 여섯 번을 씻어도 나병은 여전했고 피부는 썩어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라면 여섯 번째에서 “봐라, 안 되지 않느냐!” 하며 포기하고 물 밖으로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일곱 번째 몸을 잠그고 나왔을 때,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처럼 회복되었습니다.

여리고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6일째까지, 그리고 7일째 6바퀴를 돌 때까지도 성벽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습니다. 돌파는 과정 중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7일은 완전한 숫자이며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마지막 한 바퀴, 마지막 한 번의 순종이 채워질 때, 숫자 ‘7’이라는 하나님의 완전한 때가 찼을 때 비로소 폭발하듯 일어나는 것입니다. 7명의 제사장들이 7 양각나팔을 불며 7번일째 7바퀴를 돌 때 돌파는 일어났습니다. 

혹시 지금, 3일째 돌고 계십니까? 5일째 돌고 계십니까? 아니면 6일째 지루한 싸움을 하고 계십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7일째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때가 되었을 때, 여호수아는 외쳤습니다.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 함성은 단순한 고함이 아닙니다. 성벽이 무너진 것을 보고 지른 환호성이 아닙니다. 성벽은 여전히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고 미리 선포한 ‘믿음의 함성’, ‘기도의 함성’, ‘찬양의 함성’이었습니다. 이들이 믿음으로 소리 쳤을 때, 비로소 견고한 성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환경이 바뀌어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미리 감사와 찬양의 함성을 지르는 것, 이것이 성벽을 무너뜨리는 ‘돌파의 믿음’입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는 평생 5명의 친구 전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친구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뮬러에게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뮬러는 ‘여리고 성을 도는 심정’으로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 5년 뒤에 첫 번째 친구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 10년 뒤에 두 번째 친구가 돌아왔습니다.
  • 25년 뒤에 세 번째 친구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친구는 뮬러가 죽을 때까지도 믿지 않았습니다. 뮬러는 실패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뮬러는 죽기 직전까지 병상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결국 뮬러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 네 번째 친구가 회심했고, 마지막 한 명은 뮬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친구의 끈질긴 기도를 전해 듣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무려 52년 만의 응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6일 동안 성을 돌았는데 아무 일도 없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모으고 계십니다. 마지막 7바퀴를 도는 그날, 응답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결론: 하나님의 시간(Kairos)을 기대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리고 성을 정복하기 원하십니까?

돌파는 말씀을 받는데서 시작합니다.

돌파는 일상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임재안에서 예배자로 살 때 일어납니다. 

돌파는 끝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의 때에 일어납니다. 

참으로 모두 어려운 시기에 통과중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여러분의 각자의 여리고 성을 돌파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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